赤黛

[적먹] 프로포즈 받았는데

문(Mon) 2015. 8. 14. 11:52




너의 프로포즈는 정말이지 로맨틱하지 않았다. 지금 상상해도 그건 웃긴 일이었다. 거리를 걷던 나는 공원에 들어서기 무섭게 붙잡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냐는 물음에 너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를 잡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공원 가운데 설치된 분수는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었다. 잠시 하늘과 물줄기를 바라보던 나는 너의 행동에 놀라고 말았다. 무릎을 꿇었다. 뭐야, 하지 마.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돼 무심코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네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마치 다리를 부비작대다 떨어져 상처받은 고양이처럼. 나는 어쩔 수 없이 해보라며 툭 말했다. 너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확인한 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재킷을 뒤져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딱 봐도 고급스럽게 벨벳으로 감싼 것을 봐서 내가 예상하는 그것인 게 틀림없었다. 너는 완벽하게 외운 고백을 던지며 케이스를 열었다. 누가 봐도 값비싼 금색 반지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와, 멋지네. 나는 국어책 읽듯 대답하며 일어서는 너를 보았다. 너는 케이스에서 반지를 꺼내 네 약지에 끼웠다.


그래, 여기까진 네가 상상한 그대로 이어져야 했다. 반지가 딱 알맞게 들어간 후 결혼하자는 말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너는 멍청한 얼굴로 네 손과 반지를 바라보았다. 응, 나도 느꼈다. 반지가 헐렁했다. 너는 당황한 나머지 동공이 순식간에 다이아몬드처럼 바짝 조여들었다. 이봐, 이봐.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속으로 불렀다. 당연하게도 텔레파시 따위 통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너는 결심한 듯 반지를 빼려 했다. 아카시. 나는 네 이름을 부르며 그대로 네 손을 잡았다. 단단히 깍지까지 끼자 너의 눈과 마주했다. 무슨 말을 해야 너는 나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불안해하는 너를 보며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말했다. 이거면 됐어. 다른 사람이었다면 의심했을 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무미건조한 말투에도 너의 굳은 표정이 금세 풀어졌다. 나는 너를 알았다. 너도 나를 알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새로 사올게요. 됐어. 나는 거절했지만 내일이면 치수에 맞는 반지를 보게 될 거라 의심치 않았다. 기대는 아니었다. 그저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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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 받았는데 반지 사이즈가 맞지 않아 동공지진 일어나는 아카시와 덤덤하게 넘기는 마유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