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黛

[적먹] 210

문(Mon) 2015. 7. 27. 11:23




식당에서 아카시를 만났다. 마유즈미는 저 멀리 응시하는 시선을 피하며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태양빛은 겨울답지 않게 뜨거웠다. 뺨과 목에 닿는 햇살에 한참 밖을 내다보던 마유즈미가 수저를 들었다. 오늘의 식단은 탕두부와 반찬 몇 가지였다. 마유즈미는 두부를 건져먹으며 고개를 들었다. 먼 곳에 자리 잡은 아카시가 탕두부 그릇을 들고 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국그릇을 감싸고 움직이지 않았다. 곧게 뻗은 손가락 사이사이에 굳은 살이 보였다. 아니, 보일 리가 없지. 하지만 마유즈미는 평소 가까이서 보던 아카시의 손을 생각하며 미역을 후루룩 삼켰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조금 이상했지만, 마유즈미는 그 어느 때처럼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식사를 맞췄다. 우물우물 씹고 있고 넘겨 밥을 비운 그가 일어섰다. 아카시는 아직 일어서지 않았다. 마유즈미는 마음 놓고 움직였다.


식판을 반납하고 나가려는 찰나 앞을 가로막은 상대와 부딪쳤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마유즈미는 상대를 확인했다. 똑바로 다닐…. 아카시다.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은 아카시를 보자 그도 입을 다물었다. 더 말을 꺼내지 않고 가려던 마유즈미는 붙잡는 손에 고개를 돌렸다. 왜? 이거. 아카시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따라서 눈을 내리깐 마유즈미는 놀란 눈으로 후다닥 집어들었다. 뒷주머니에 꽂았던 학생 수첩이다. 펼쳐져 있던 걸 접고 나니 아카시의 눈빛이 무서웠다. 고맙다. 마유즈미는 더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분명 들켰어. 마유즈미는 학생 수첩을 슬쩍 열어보다 그림자에 얼른 닫았다. 다행히 스쳐지나간 학생이었다. 그는 안도하며 다시 펼쳐보았다. 학생증 옆에 꽂힌 사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방금 전 아카시가 보던 시선이 평소보다 더 경멸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빨리…빼는 게…젠장. 그는 귀를 긁으며 수첩에 손을 댔다 떼기를 반복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마유즈미는 수첩을 탁 닫고 주머니에 넣었다.


접힌 안에는 골대를 바라보고 있는 아카시가 들어있었다. 웃는 듯 아닌 듯 새겨진 모습은 그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었다.



방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마유즈미는 방 안에 있는 상대를 발견하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가 방 앞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문이 열렸다. 들어오지 않고 뭘 하는 거지, 치히로? …여기는 내 방인데. 내가 네 방에 있는 게 무슨 문제라도? …아니오. 마유즈미는 아리송한 얼굴로 아카시를 내려다보았다. 차분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처음부터 이 방에 사는 주인처럼 보였다. 내 방인데. 마유즈미는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몇 번이나 꾸는지 모르겠다. 마유즈미는 이런 자각몽을 꾸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온라인 NPC처럼 돌아다니는 아카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조종하지도 못하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는 나란히 옆에 앉은 상대를 인식하며 머리를 털었다. 슬쩍 옆을 보자 마유즈미를 계속 응시하고 있던 아카시가 말했다. 할 말이라도? …고해라도 받아준다면. 좋아. 아카시는 다리를 꼬며 우아한 목소리로 허락했다.


…오늘 사진을 들켰어. 무슨 사진을? 당연히 너에게 네 사진을. 마유즈미는 가방에서 학생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오호, 이런 걸. 아카시는 흥미로운 눈으로 사진을 보았다. 언제 찍은 거야? …저번 주에. 인화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나봐? 보통 휴대폰에 담아두고 있잖아. 정곡을 찌르는 소리에 마유즈미가 고개를 돌렸다. 어쩜 현실의 아카시와 꿈의 아카시가 똑같을 수 있을까. 비록 현실의 아카시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경멸당했을까봐? …뭐, 어차피 부 활동에만 만나는 사이인데. 마유즈미는 술술 말하는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이래서 현실에서도 자꾸 말을 걸려고 하는 것이다. 꿈에서 겪은 경험이 자꾸 현실까지 뻗어나가려 하니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다른 상대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거기에 이런 식으로 대화해봤자 소용없었다.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발언은 삼가줬으면 해."


마유즈미는 두 손을 모아 중얼거렸다. 하느님, 부처님, 저를 용서하소서. 진심어린 고해에도 아카시는 그저 웃기만 했다. 좋아한다니까, 믿지 못하는 건가. 아카시는 일어서서 고개 숙인 마유즈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네 사랑을 사하노라. …죄라고 해줄래? 싫어. 그가 고개를 들자 아카시는 옅게 웃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깨어날 시간이야.


마유즈미가 눈을 떴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 침대에서 일어나 한숨을 내쉬었다.



* * *


글쓰기 좋은 질문 210.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 + 방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