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黛

[적먹] 에로동인지 들키고 집 나갔을 때 무엇을 챙겨야 하는가?

문(Mon) 2015. 7. 28. 01:06




뭐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는지 알 수 없다. 마유즈미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앞을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아카시가 있었다. 상대의 눈빛이 서늘하다. 마유즈미는 고개를 젓다가 입을 열었다.


"내 말 알아듣긴 한 거야?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하지만 계속 침대 밑에서 발견되는 이유가 있어, 치히로?"


내가 만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지, 안 그래? 그게 아니야. 마유즈미는 이 상황에 대해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 대화를 들으면 얼핏 파악이 된다. 마유즈미 치히로는 오타쿠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영화,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카시도 마유즈미의 취미 생활을 보면서 이런 게 오타쿠구나 하고 인식한 상태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아카시는 그의 취미에 대해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마유즈미도 웬만하면 가벼운 것만 보여줬으며-오버클럭이라던가 애니메이션 보기라던가 피규어 닦기라던가-그것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맞아, 그래서 이해해주고 넘어갔구나 했어.


그렇게 유유자적 취미 생활을 즐기던 마유즈미는 어느날 집에 일찍 온 아카시에게 피규어와 동인지를 들켰다. 누군가 평소 보던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마유즈미는 지금 당장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들킨 것은 평범한 피규어와 동인지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놀랄 정도로 고퀄리티를 자랑하는…그렇다, 에로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피규어에 노팬티, 노브라는 기본이요. 옵션이랍시고 딸려온 촉수 모양에 아카시는 처음에 알아보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곧이어 보이는 꿈틀꿈틀 딱 봐도 혐오스런 줄기가 그려진 동인지를 보는 순간 파악했다.


"……하?"


아카시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리하여-많은 일이 생략됐지만 이걸 다 설명해주기에 지금 목숨이 간당간당하다-현재 마유즈미는 아카시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 기세를 몰아 침대 밑이며 책장 뒤까지 샅샅이 찾은 아카시는 온갖 종류의 에로동인지를 앞에 쌓아뒀다. 마유즈미는 쪽팔렸다. 새빨간 표지의 책과 거기에 그려진 여자들이 전부 자신을 원망하는 듯 했다.


"이런 거에 당하고 싶었던 거야? 그럼 내가 이렇게 변해야겠네?"

"아니야! 그건, 곧 있으면 프리미엄 값이 붙으니까!"

"거기다가…호오, 이런 것도 쓰고 싶었군."


아카시는 아가씨가 딜도에 울고 웃는 표지를 들이댔다. 아냐. 마유즈미는 애써 침착하게 외면했지만 계속 들이대자 결국 확 내치고 말았다. 탁 떨어진 동인지의 구김을 발견한 그는 순간 울컥해 소리쳤다.


"이건 내 취미 생활이라고! 현실이랑 다르단 말이야!"

"내가 올 때는 힘들고 지치다며 피한 게 누구지?"

"당연히 힘들고 지치지! 부품 조립하랴! 피규어 사러 가랴! 네가 돌아올 때쯤에 나는 땡볕 아래에서 돌아다니다 들어온 거라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일하다 온 너와 달라!"

"여기에도 에어컨 있어, 치히로. 그리고 요즘 세상에 전화 한 통이면 시킬 수 있는 것들을 굳이 나가서 사는 이유가 뭐지?"

"한정은 그 자리에서밖에 안 판다고!"

"그깟 이런 한정이 네 몸보다 중요하다?"

"그래!"


버럭 소리친 마유즈미는 그늘이 깔린 아카시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아카시는 말이 없었다. 그저 마유즈미를 올곧게 볼 뿐이었다. 틀린 말 하나 없다는 듯 당당했다. 사실 여기서 모든 수치감을 받은 건 마유즈미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얼굴을 감싸다 아카시를 스쳐 지나갔다. 아카시는 뒤돌아 따라갔다.


"더 할 말은?"

"없어."


마유즈미는 가방 하나를 집어 옷가지를 챙겼다. 아카시는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등에 고정된 시선을 보아하니 어디까지 가는지 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는 떨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잽싸게 일어서서 현관까지 걸어갔다. 아카시가 따라오자 홱 몸을 돌려 말했다.


"치사해서, 내가 나간다, 나가!"

"어디를 갈 셈인데?"

"알게 뭐야."


저것들은 친히 두고 가주지. 으르렁 대답한 마유즈미는 신발을 구겨신고 현관을 나섰다. 쾅! 문이 닫히자 그는 씩씩대며 복도를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온 마유즈미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몸을 젖혔다. 나오는 기색이 없다. 그는 인상을 구기며 버튼을 눌렀다. 층 숫자가 바뀌는 걸 보며 마유즈미는 씩씩댔다. 진짜, 한 번이라도 져주지 않고, 내가 이렇게까지, 나와야겠냐. 띄엄띄엄 중얼대던 마유즈미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


마유즈미는 입고 있는 재킷이며 바지며 심지어 가방까지 뒤졌다. …없다, 가장 중요한 지갑이 없어. 그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상태에서 전등까지 꺼지자 벌떡 일어섰다. 어쩌지, 이대로 나가봤자 노숙밖에 더 하겠는가? 노숙은 싫은데. 현실적으로 따져봐라, 집도 있고 마누라도 있는 데서 혼자 외롭고 쓸쓸히 벤치에서 잘 수 없지 않는가? 마유즈미는 흔들리는 공동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그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카시는 소파에 앉아 동인지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딜도는 기본이요, 온갖 어른의 장난감을 섭렵한 데다가 판타지까지 뒤섞여 있는 걸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 치히로가 만족하지 못하고 거부한 걸까? 물론 그건 아니겠지만 아카시는 이렇게 많은 에로동인지를 보면서 조금 자신감을 잃었다. 비록 그 자신감이 평소에서 약 1% 떨어졌을 뿐이지만 말이다. 올 누드 피규어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던 아카시는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나갔던 마유즈미가 돌아왔다. 아카시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치히로?"


무슨 일로 돌아왔냐며 자기도 모르게 비꼬려던 아카시는 허리가 잡히자 눈을 깜박였다. 마유즈미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그는 꽤나 고심한 어조로 말했다.


"중요한 걸 두고 갔어."

"동인지?"


아카시가 책을 가리키자 마유즈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너."


침묵이 흘렀다. 긴장한 마유즈미를 보며 아카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작 머리 굴려 생각한 게 그 말?"


이것 봐, 또 지지 않는다. 마유즈미는 무시하고 아카시를 꽈악 끌어안은 채 현관으로 이동했다. 빨리 신발 신어. 그러자 아카시는 그에게 안긴 채 눈만 꿈벅였다. 아, 좀.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마유즈미는 툴툴대며 현관에 앉았다. 그리고 아카시의 발을 잡고 신발을 신겨주었다.


"……치히로."

"왜."


지그시 바라보던 아카시는 신발이 다 신기자 마유즈미와 눈높이를 맞췄다. 일어서려던 그는 아카시를 보고 툴툴댔다. 왜. 아카시 특유의 옅은 미소에 마유즈미의 시선이 저절로 옆을 향했다. 그 모습에 아카시가 대답했다.


"촉수는 될 수 없지만…."

"그런 거 되지 마."


하지만 1층에 도착할 때 '나 지갑 없어'라는 아카시의 발언에 결국 다시 올라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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뫄가 솨에게 에로동인지 들켰을 때 + 부부싸움하고 니 꺼 챙기고 나가라 할 때 썰 조합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