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정신세계




허물어져 부식된 건물 사이로 흑등고래가 헤엄쳐 갔다. 바다도 아닌 하늘을 유영하는 고래는 듣도 보지 못해 마유즈미는 제 뺨을 꼬집어봤다. 아프지 않다. 여기는, 꿈이구나. 안개가 잔뜩 낀 거리의 그는 고장난 가로등 아래 섰다. 어디선가 짐승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으시으시한 도시였다. 이끼가 잔뜩 낀 벽 사이에는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것처럼 날카롭게 깎인 것도 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그는 안개에 비치는 그림자에 눈을 깜박였다. 불그스름한 빛깔은 마치 노을과 같다. 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림자 끝을 밟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 저만치 멀어져갔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숨이 벅차다. 그는 이곳이 바다라고 생각했다. 물거품이 나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둔한 팔을 휘젓고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고 나니 끝이 보였다. 저보다 높은 키의 빨간 벽돌로 쌓인 담이 보였다. 그림자의 주인이 보였다. 그는 손을 뻗었다. 돌아가자. 육체에서 떠나간 영혼은 정처없이 떠돌다 사라진다 하였다. 마유즈미는 한 발짝 다가가 다시 손을 뻗었다. 너에겐 득이 될 게 없어. 무너질 것처럼 휘청대는 건물 사이로 메아리가 퍼져나간다. 네 자리는 아직 남아있다고. 갈라진 도로 사이로 난 잡초가 흔들렸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마치 물보라가 일어나듯 갈대처럼 휘어졌다. 내가. 소년이 말하기를. 돌아간다면. 소년이 말했다. 네가 버틸 수 있어? 그 말에 마유즈미는 침을 삼켰다. 듣고픈 말은 오지 않으리라 믿었다. 언젠가처럼 거부할까 대답하지 않은 자신처럼. 하지만 그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마른 입술을 핥은 그가 말했다. 어. 뚜렷한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고래의 두꺼운 지느러미가 움직였다. 저 높이 선 건물 하나가 무너지자 시멘트 파편이 쏟아졌다. 마유즈미가 급히 팔을 뻗었다. 어둠이 잠겼다 느끼고 온몸이 통증을 느낄 때, 두 손이 맞닿았다. 마지막으로 희미한 빛에서 소년의 미소를 본 것 같았다.



* * *


보쿠시를 찾으러 온 마유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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