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용사와 마왕




오늘 마왕-마유즈미 치히로의 평화가 깨졌다. 유유자적 이번 달 발매한 라노베를 읽고 있던 마왕은 급작스런 소식에 흐리멍덩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응? 그러니까, 뭐라고? 헐레벌떡 마왕의 방으로 들어온 부하A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전했다. 용사가, 용사가 쳐들어왔습니다! 응? 마왕은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책 너머로 부하A를 쳐다보았다.


용사? …그럴 리가 없는데. 마왕-마유즈미 치히로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방을 나섰다. 어디 가야 있지? 마왕이 묻자 부하A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게…저…. 말을 제대로 못하는 부하A를 보며 마유즈미는 무시하기로 했다. 가보면 알겠지. 태평하게 걷던 마왕은 성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저거, 용사야? 새하얗게 빛나는 갑옷을 거친 붉은 머리의 남자는 마왕이 생각한 것보다 어린 용사였다. 길고 적당한 크기의 검을 들고 있는 용사는 책갈피를 꺼내드는 마왕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하A는 마왕과 용사를 번갈아보다가 저 멀리 도망가고 말았다. 정말 쓸모없다니까. 마왕은 전혀 섭섭지 않은 목소리로 떠들며 책을 덮어 품에 넣었다.


마왕은 느릿하게 계단을 올라 높은 자리에 있는 해골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용사를 향해 마왕이 말했다. 뭐 하러 온 거야? 우린 인간 세상에 쳐들어가지도 않았다고. 약조한 것과 다르잖아. 그러자 성검을 번뜩이며 용사가 다가왔다. 음, 어쩌지. 내일 나올 라노베는 꼭 읽고 싶었는데. 딱 봐도 나보다 세보이잖아. 온갖 잡생각을 하며 용사가 코앞까지 오는 걸 보던 마왕은 턱이 잡히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응? 용사는 마왕의 반응과 상관없이 이리저리 머리를 살펴보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답다, 예쁘다는 평가보다 무섭단 생각이 앞서갔다.


나는 라쿠잔 왕국에서 온 아카시 세이쥬로다. 마왕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묻는 마왕 앞에서 용사-아카시 세이쥬로는 검을 거뒀다. 그리고 붉은 눈으로 마왕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야. ……하아?



* * *


나태한 마왕과 마왕같은 용사의 이야기...프롤로그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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