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일상 어느 날



길게 뻗은 빛줄기가 침대에 닿았다. 새하얀 시트 위로 녹아내리는 상아빛은 끝없이 뻗어갔다. 마침내 침대 끝과 끝을 가로지르자, 실루엣이 그려진 이불이 움직였다. 얇은 여름 이불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등이 끈적거린다. 달라붙은 맨살이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찌직 떨어지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몸을 비틀었지만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꿈지럭대던 그는 눈을 비볐다.


눈앞에는 빛에 반짝이는 먼지가 떠다녔다. 밤에 제대로 닫지 않은 커튼이 보였다.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은 유난히 따사로웠다. 마유즈미는 간질거리는 상체를 긁다 손가락이 닿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깍지까지 낀 두 손이 보였다. 왼쪽에 낀 반지가 눈에 띄자 마유즈미는 깍지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천천히 벌렸다. 힘이 들어가 있다. 귀찮은 듯 창문과 손을 번갈아보다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치히로. …깨어있으면 말을 해. 잠에 취해 어눌한 발음이 나오자 허리를 끌어안는 힘이 더 세졌다. 아야야. 감흥 없이 아픔을 호소하며 마유즈미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슬금 이동했다. 협탁에 손이 닿자 그는 휴대폰을 집었다. 잠금 화면을 풀며 평소 보던 사이트를 누르려 하니 앞에 깍지 끼던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야. 휴대폰을 꾹 누르는 손을 치우려 해도 계속 방해하자 마유즈미는 결국 포기하고 내려놓았다. 그러자 손이 다시 깍지를 끼고 꽉 안았다. 이것도 저것도 못하면…. 투덜거리던 그는 힘겹게 몸을 돌려 상대와 마주보았다. 초승달처럼 접힌 눈과 마주하자 마유즈미는 팔을 둘렀다.


그럼 한숨 더 자자. 좋아. 아카시는 수응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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