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비 오는 날




교실에 남아있던 우산을 찾았다. 사물함 구석에 박혀 있던 검은 우산을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힘을 줘 펴본 우산은 망가진 것 하나없이 멀쩡했다. 마유즈미는 가방을 메고 교실 밖을 나갔다. 아직 몇몇 학생들이 교실이나 복도에 있었다. 그는 유유히 스쳐지나가 아래로 내려갔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마유즈미는 신발장 앞에 서서 신발을 꺼내들었다.


지금 돌아가는 길이야? 낯익은 목소리에 마유즈미는 옆을 돌아보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농구부 주장을 보며 마유즈미가 쥐고 있던 걸 놓았다. 신발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는 느린 동작으로 갈아신었다. 응, 오늘은 연습 없으니까 바로 가려고. 그러자 아카시가 말없이 스쳐지나갔다. 마유즈미는 신내화를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마유즈미는 조용히 우산을 피다가 슬쩍 아카시를 보았다. 그는 지붕 아래 서서 가만히 밖을 바라보았다. ……우산 없어? 곧 가지러 올 거야. 누가 가지러 오는지 알 법했다. 운전기사라던가, 그렇겠지. 교문 쪽을 본 마유즈미는 그러냐며 우산을 펼쳤다. 하늘을 가린 우산을 보던 마유즈미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멈춰섰다.


너 말이야. 소리없는 시선에 마유즈미는 우산을 살짝 들어올리며 손짓했다. 교문까지 데려다줄게.


아카시의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단어 하나를 선택해 콕 짚어 말할 수 없었지만, 평소와 다른 눈빛이었다. 하지만 마유즈미가 더 살펴보기 전에 본래 보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아카시는 지붕과 우산 사이에서 잠깐의 비를 맞고 안으로 들어왔다. 돌연 서늘한 체온이 닿았다. 마유즈미는 그를 내려다보다 걸음을 옮겼다. 둘 사이에서 대화는 없었다. 검은 우산 옆으로 색색깔 우산들이 지나갔다. 두 사람이 걷는 속도는 비슷했다. 이상하게도, 호흡이 맞았다. 그리 춥지 않음에도 하얀 입김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내일은 안개가 낄지도 모른다. 교문에 도착하니 때마침 차가 멈추고 있었다. 항상 보던 검고 긴 자동차였다. 마유즈미는 아카시를 따라 차문 앞에 섰다. 나오려는 운전기사에게 아카시가 손을 들었다. 빗방울 묻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베이지 색상의 좌석이 보였다. 아카시는 마유즈미를 보다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차는 떠났다. 바닥에 고인 웅덩이에서 물방울이 바지에 튀었다. 마유즈미는 바지를 툭툭 털고 저 멀리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날카로운 시선이 닿은 얼굴을 손으로 쓸며, 그는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추적추적한 방과 후였다.



* * *


시점은 여름방학 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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