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377 + 사망주의
명문가라고 해서 무덤이 따로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어쩌면 아카시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땅에 묻는 것을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아카시가 묻히기 싫었다던가. 누가 봐도 고급스런 항아리는 아카시의 아버지 손에 들렸다. 적막이 흐른다. 우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이 싸늘하고도 무서운 장례식에서 마유즈미 치히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쩜 이리도 조용할 수 있는가? 누군가 죽었는데? 그것도 네 자식이 죽었어. 떠나는 차를 붙잡지도, 따라가지도 못한 마유즈미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날은 우중충했다. 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던 마유즈미는 좀 더 빠르게 뛰었다.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베란다에 걸린 옷을 걷어냈다. 하나둘 걷어내다 보니 익숙한 냄새가 났다. 그는 셔츠 하나를 잡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움이 느껴진다. 거실에 마른 옷가지를 던져둔 마유즈미는 베란다 문을 그대로 연 채 거실로 들어갔다. TV를 켜자 코미디 프로그램이 한창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욕실로 들어섰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마유즈미는 거실에 털썩 앉았다. 언덕처럼 쌓인 옷을 하나하나 개며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스피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유즈미는 어처구니없이 짧게 조소했다.
“야, 아카시. 저게 웃….”
순간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뒤돌아볼 수 없었다. 그는 묵묵히 빨래를 정리한 후 일어섰다. 베란다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찌나 바람이 불던지 거실까지 빗줄기가 들어왔다. 마유즈미는 천천히 걸어와 베란다 문을 닫으려다 말고 하늘을 보았다. 비가 내리고 있다. 주룩주룩,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던 그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그는 그제야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떠나갈 녀석이 아니었다. 적어도 주름살이 보일 즘에야 가겠거니 하고 마음을 놓았다. 당연했다. 아무런 병도 없는 남자가 갑작스레 죽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떠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런데 세상은 아카시를 데려갔다. 아직 땅에 발을 딛고 지내야 할 그를 데려가 버렸다. 네가 아무리 대단한 남자라고 해도 하늘에서 부른다고 가버리냐? 응? 이번 주에 같이 놀러가기로, 해놓고, 그렇게, 떠나면, 나는. 홀로 남겨진 이 집에 찬 공기가 휘몰아쳤다. 마유즈미는 무릎 꿇은 채 비를 맞으며 울었다. 그는 용기 내 소파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죽음은 마치 이별과 같다. 울음은 멈출 줄 몰랐다.
* * *
글쓰기 좋은 질문 377. 죽음은 마치 이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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