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회장님과 체크무늬 오타쿠
로비에 서 있던 경비원의 시선을 빼앗는 이가 있었다. 보지 않으려 해도 그 화려함에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대리석이 깔린 로비에 들어온 남자는 회전문을 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다소 지쳤는지 소매로 이마를 훔치고 있었다. …경비원은 남자를 위아래 훑어보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체크무늬 남방 안에는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전형적인 청바지와 운동화 패션이라니. 그래, 그것까지 다 봐줄만 하다 이거야. 얼굴은 나름 괜찮거든.
문제는 남자의 손에 든 쇼핑백과 등에 멘 배낭이 문제였다. 누가 봐도 특정 행사에 다녀온 모습이 경비원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불안과 짜증이었다. 남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로비를 둘러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안내원에서 뭔가 물어보러 가는 모양이었다. 경비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기요.”
낮게 깔린 목소리에 바른 자세로 서 있던 안내원이 빙그레 웃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여기, 회장…을 만나러 왔는데.”
더듬더듬 말하는 목소리에 안내원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장? 회장님? 아카시 세이쥬로님? 당황한 안내원을 보자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 뜻 없는 얼굴로 마주보았다.
“못 부르죠?”
“아, 그게, 잠시 만요.”
안내원은 황급히 전화기를 들고 위쪽으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남자는 기대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높은 천장 한 번 보고, 뻥 뚫린 유리창을 둘러보고 있었다. 안내원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성난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손님.”
“네.”
“실례지만 성함이….”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던 경비원과 눈을 마주친 남자는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난처한 안내원을 보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됐어요. 네? 약속도 안 지키는 놈 기다릴 필요 없지. 혼잣말하던 남자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황당한 안내원과 여전히 촉을 세운 경비원을 지나 그는 회전문 손잡이를 잡고 쭉 밀었다. 빙글 돌아간 회전문에 몸을 맡긴 그는 출구로 빠져나갔다. 유리창에 비친 남자는 인도에 따라 멀리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안내원은 전화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천천히 내려놓으려 했다. 그 때, 심각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어? 예? 안내원은 처음 듣지만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네, 회장님! 방금…남성 한 분이 오셔서…. 체크무늬? 네? 네. ……끊지.
전화가 끊기 무섭게 로비에 배치된 경비원들의 손이 일제히 귀로 올라갔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다가 급히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안내원은 전화를 끊고도 안절부절 못했다. 설마 아주 중요한 손님이었나? 그런 것치고 행색이며…태도가…. 불안해 떨던 안내원은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회장을 발견하고 바짝 굳었다. 회, 회장님!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회장은 바로 출구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유리창에 보이는 회장 앞으로 경비원과 아까 봤던 체크무늬 남방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경비원은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남자를 붙잡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마침 신호가 걸려 걸어가려 했다. 아. 남자는 경비원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야, 또.
그렇게 데려온 남자는 회장 앞에서 아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까먹었지?”
“아뇨.”
“웃기지 마. 그럼 그 전에 아무런 연락도 안 하는 건데?”
투덜거리는 말에 회장은 남자 손에 든 쇼핑백을 가리켰다.
“들어 드릴까요?”
“뭐래. 이거 내가 겨우 구한 한정판이거든? 네 손에 맡길 것 같냐!”
“제 사무실에 두고 가요.”
“수작은. 밥 먹고 바로 갈 거야.”
“좀 이따 가요.”
“됐네.”
경비원은 멍청하게 서 있다가 회장의 손짓에 서둘러 몸을 돌렸다. 건물로 들어가기 전 힐끔 바라 본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걷고 있었다. 항상 차 타고 오는 회장님만 봤는데, 오타쿠 같은 녀석과 걸어가는 걸 보니 조금 이상했다. 어울리…지 않는데. 경비원은 고개를 저으며 로비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관계자가 보지 않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두 남자는 손을 맞잡은 상태였다.
* * *
장거리 연애인 듯 아닌 듯 하는 흐름으로 10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느낌으로
서로 말은 안 꺼냈지만 중간부터 사귀고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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