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잠자는 그대 옆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예고한다고 믿어왔는데, 눈앞에 쓰러진 아카시를 보는 순간 그런 건 다 거짓이라는 걸 알았다. 들고 있던 가방을 내팽개치자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안에 들은 피규어 팔이라도 나간 걸까? 그런 생각은 아카시를 안고 응급실에 가기까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머릿속에 묻혀 있었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오늘밤은 선선하니 같이 산책하러 나가야지, 갔다가 편의점에 들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야지, 언제나 소소하게 생각하던 일상이 무너졌다. 앞에서 진단 결과를 알려주는 의사의 말도 들리지 않아 마유즈미는 자신의 귀가 고장 난 줄 알았다. 고막이 터졌나보다. 놀래서, 그래서, 찢어졌나보다. 그래, 차라리 내가 아프자. 그게 낫다.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몸뚱이는 병실 침대에 눕혀졌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소독약 냄새가 오늘따라 유난히 짙었다. 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병원이 싫었다. 마유즈미는 옆에 앉아 아카시를 내려다보았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가 정말 아파보였다. 아파? 아카시 아파? 물어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저런 걸 씌울 정도로 아카시는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도 같이 출근해 헤어졌다. 키스해달라는 아카시를 보며 밖에서 그러지 말라고 핀잔했던 자신이 생각났다. 뭐가 막힌 것처럼 답답한 마음이 꺼지지 않아 가슴을 계속 두들겼다. 한참 바라보던 마유즈미는 호흡기를 떼버렸다.


어디로 가지? 가로등조차 켜지지 않은 어두운 세상에는 자신과 아카시만 있는 것 같았다. 귀를 간질이는 숨소리에 마유즈미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앉힌 아카시는 옆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아카시와 앞을 번갈아보았다. 운전대를 쥐고 있으니 손이 떨렸다. 정신 차리고 운전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다시 내렸다. 차를 버리고 갈 곳은 집밖에 없었다. 마유즈미는 평소처럼 침실로 들어가 아카시를 눕혔다. 출렁거리는 매트 위에 아카시가 축 늘어져 있었다. 코끝에 손을 댔다.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마유즈미는 제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 * *


잠에 빠진 아카시와 기다리는 마유즈미

더 쓰고 싶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난제 이어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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